♪ 제주살이/한라산 낙상사고

참고 견딘다 - 철봉에 매달려 아등바등

풀잎피리 2024. 2.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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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사고 투병기 363]  

블로그 댓글의 격려를 번역
철봉에 매달려 아등바등하는 hang in there
S24울트라가 전해주는 과거와 현재의 버티는 시간들
 

노당님의 댓글

 

낙상사고 후 2년의 재활은 굴곡이 심한 삶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옆에 두고 집 주위만 뱅뱅돈 재활의 시간
안타까운 시간과 안감힘의 땀방울이 뒤엉겨 재활떡이 되었다.
 
1년반이면 철심을 뺀다고 했는데 덜 붙었다는 소리에 실망했고
슬럼프를 딛고 이를 악물고 버티며 고된 재활을 이어갔다.
허리를 삐끗하여 걷기 외 모든 재활을 중단하는 돌발사항도 발생했다.
 
그러다가 설 쇠러 와서 엉겹결에 철심제거수술을 받고
비오는 날 목발을 짚지 못해 침대에 누워 핸드폰 놀이를 했다.
그 포슽에 격려의 댓글들이 달렸다.
 
그 중 노당님의 댓글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며칠만 참으시면 곧 정상으로 돌아 옵니다라는 번역을 기다려 봅니다."
2년의 인고의 시간을 견딘 재활자로서 "참고 견딘다"는 어떻게 번역될까?
 

 

 

hang in there

 

 "hang in there"를 직역하면 "거기에 매달려 있어" 란 뜻이다.
매달려 있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버티라는 의미이다. 
그러고보니 제주의 헬스장에서 철봉에 매달려 아등바등했던 시간들이 
수원의 우시장천 걷기운동의 야간 보안등처럼 점점이 나타난다.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2022년 12월이다.
인바디검사 결과 몸의 좌우 뒤틀림이 "심한불균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애가 된 새끼손가락의 악력을 높이기 위하여서라도 철봉매달리기는 필요했다.
 
처음에는 철봉에 그냥 매달리는 것도 힘들었다.
매달리면 쉽게 풀어지는 장애가 된 새끼손가락을
운동 휴식 중 꺾기와 구부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풀어주곤했다.
 
매달리기를 매일 3번을 실행하였다.
그 사이 사이 새끼손가락을 풀어주었다.
매달리는 시간보다 손가락 풀어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래면서 턱걸이를 시도했고 2023년 3월에는 턱걸이 3회를 했다.
여름이 되어 5회를 하게되었고 연말 10회 목표로 매일 턱걸이를 3회씩 했다.
가을에는 자신감도 생겨 첫회 10회, 2회째는 7회, 3회째는 5회를 아등바등하며 실행했다.
 
그러나 11월의 허리삐끗으로 12월은 헬스운동을 중단했다.
12월1일 인바디검사를 했는데 "신체좌우불균형"은 그대로였다.
더 열심히 철봉매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허리 통증이 가로막았다.
 
2024년 들어 1월6일 다시 턱걸이를 시도했지만
5회 조차도 아등바등 손이 풀어졌다.
2월 한 달은 철심제거하느라고 헬스를 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재활을 어느 정도 지나야 헬스를 시작한다.
그러면 턱걸이는 아마 3회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견뎌야 하는 재활, 그냥 하루 하루 이어가야 한다.
 
 

구글 북스 엔그램 뷰어 (Google Books Ngram Viewer)

 
구굴의 Books Ngram Viewer로 "hang in there"를 검색해보았다.
내가 태어난 1956년 즈음부터 "참고 견딘다"고 기록된 책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만치 우리 세대는 어렵고 힘든 시기였고
이제는 아들에게서도 배워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대로 변했다.
위치 바를 2006년으로 가져가 보았다.
 
내 생애 가장 절박하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하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 때의 가파른 급등선에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도 땀과 눈물을 견디고 있었다.
아마 그런 무언가가 나를 격려하고 버티게 해준 것일 수도 있다.
 
2007년 내 책상의 컴퓨터에서 처음 유튜브를 알았다.
그리고 현재는 영상은 유튜브, 검색은 구굴 세상이 되었다.
모든 것이 빅데이터로 수렴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2006년 전후의 블로그 일기

 
벌써 18년이 흐른 시간을 지금에서야 보니 꿈을 꾸는 것 같다.
그 때 아들은 군복무 중이었고 휴가를 나와 설악산 주전골 여행을 했다.
딸은 고3으로 수능을 보았고, 학교 앞에서 응원하는 학부모들의 심정을 느꼈다.
 
그 후 1년을 건너뛰었고, 다음 해에 블로그로 돌아왔다.
쓰디쓴 경험과 알 수 없은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현실에 불어닥친 파도를 넘어
새 마음으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도 그 시절의 파고를 잘 참고 견뎌 주었다.
이제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부모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처세도, 말발도, 맛도, 웹도 앞서가는 자식들을 보며 잘 커 주었다는 흐뭇한 마음이다.

그래 너희들이 잘 커 주었기에
아빠는 은퇴 후 제주살이를 할 수 있었지
끌리는 것에 빠져보는 새 삶의 개척을


수직동굴 탐사 / hang in there


고사리를 찾아 수직굴에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밧줄에 매달려 식은 땀이 나고 팔에 힘이 빠져도
젖먹던 힘까지 뽑아 아등바등 견디며 위로 올라갔다.

인생은 짧은 순간도, 긴 세월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므로 낙상사고와 재활은 제주살이의 낭비 시간이 아니라
내 삶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인연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hang in there
아무리 힘든 시련이 닥쳐도
이젠 참고 견딘다는 것을 재활 과정에서 확인했다.
 
 

hold it in


 
"참고 견딘다"의 두번째 번역은 "~ hold it in"으로 나타났다.
찾아보니 hold it in은 생리적 현상을 참는데 주로 쓰인다고 한다.
직역해보면 "그것을 꼭 붙들고 있다"란 의미이다.
 
그래 추억은 터키여행에서 이스탄불의 시간으로 달린다.
보스포루스해협에서 석양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때 아내 몫까지 마신 게 화근이 되었다.

주차장이 된 이스탄불 도로 위의 버스 속에서
산고를 치르는 임산부처럼 앞 시트를 부여잡고 참고 참았다. 
식은 땀을 흘리고 눈물이 흘리는 악몽 속에 버스가 섰다.
 
오줌을 지리며 달리고 달려 쏟고 쏟았다.
터어키 여행의 하일라이트 기억이다.
그래 무엇을 부여잡고라도 배설을 참는 것이 hold it in이다.
 
 

산책길의 보안등


 
 2년의 재활 발자국도 지나면 추억이다.
보안등이 주마등이 되어 뇌리에 박히는 시간
핸드폰을 보면서 끽끽거리기도 하면서 하루 하루는 지나간다. 
 
10년 전에도 이렇게
10년 후에도 이렇게
오늘을 사는 방법이다.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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