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내조 8

[낙상사고 투병기 117] 삼베옷 - 한여름의 삼베옷, 시원해서 좋구나

까슬까슬하다. 땀을 빨리 흡수하고 배출한다. 삼복더위에 딱이다. 삼복더위에 목발 짚는 일 땀과 싸우는 재활길이다. 땀에 젖은 옷이 짜증을 불러오기도 한다. 삼베베개에 이어 이번에는 삼베 반바지를 입었다. 삼베는 삼으로 짠 천을 말하며, 베 또는 대마포로도 불린다. 옛날에 베는 여름에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직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삼베옷을 보기가 어렵다. 나도 한 때 40대에는 삼베옷을 입고 싶었다. 그러나 은퇴 후 낙상사고를 난 후에야 삼베옷을 입는다. 시원한 삼베 바지를 입고 걷기연습을 했다. 옷이 까슬까슬해서 구멍이 나서 시원했다. 삼복더위 걷기연습길의 옷으로 딱이었다. 며칠 후 삼베천으로 윗옷도 만들었다. 삼베천이 부족하여 나시 형태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만들어준 ..

[낙상사고 투병기 97] 우산 2개 - 나는 목발, 아내는 우산

장맛비가 내린다. 목발을 짚으니 우산을 들 수 없다. 아내가 우산 2개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나서도 장맛비가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침대에만 있을 수 없어 도서관이라도 가자. 아내가 우산 2개를 들고 나는 목발을 짚고 집을 나섰다. 나는 목발을 짚으니 우산을 쓸 수 없다. 아내가 우산 1개는 들고 1개는 펴서 옆에서 걸었다. 그러나 목발을 움직여야 하니 좀 떨어져야 한다. 그랬더니 우산 넓이의 범위를 벗어나 몸 한쪽이 젖었다. 도서관에서 나올 때가 되니 비는 더욱 많이 내린다. 아내가 우산 2개를 다 폈다. 1개는 나를 씌워주고, 1개는 아내가 썼다. 2개의 우산이 비바람에 휘청거린다. 나는 나대로 힘들고, 아내는 팔이 너무 아프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니 배수구가 막혀 길에 물이 고였다. 10..

[낙상사고 투병기 94] 천도복숭아와 배롱나무 - 아내의 마음

천도복숭아와 배롱나무 아내의 마음이 매치된다. 상큼함과 흐뭇함이 있는 한 낮 오전에는 침대에 누워있고 오후에 밖에 나가 잠깐 걷기연습하고 초여름의 재활 시간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아내가 시장에서 천도복숭아를 사왔다. 그리고 꽃 한송이를 보여준다. 갑자기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 오후는 목발을 짚고 걷기연습이다. 우선 꽃을 보았다는 곳을 찾아갔다. 멀리 붉게 보이는 나무, 배롱나무였다. 그런데 막상 한송이를 보고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다니 늘 야생에서 전체 수형과 꽃을 보았기에 한송이라는 것에 핑계를 댄다. 떼어놓으면 알 수 없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신초만 보고도 이름을 안다는 약초꾼이 부러운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취미로 야생화를 즐기고 있다. 그 취미 덕에 아내가 따온 꽃 한송이에 호기심을 발하고..

[낙상사고 투병기 73] 달팽이 - 미나리 줄기에 붙어 측은지심 발동

침대생활은 밖의 그리움 미나리를 함께 따라온 민달팽이 아내의 측은지심에 풀 속으로 침대생활을 하는 낙상 환자 날씨는 벌써 녹음의 계절이다. 아내가 들려주는 밖의 얘기들 밖의 그리움이 호기심을 발동하는 시간 미나리를 뜯어와 다듬던 아내가 급히 내게로 왔다. 미나리 줄기에 벌레가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민달팽이였다. 응! 달팽이가 우리집까지 왔네 순간, 패닉의 달팽이 노래가 떠올랐다. 달팽이 노래가 유행하던 1990년대 후반 그 때의 5년은 나의 인생 최악의 저점이었다. 이적의 가사가 좋아 흥얼거리며 그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침대생활이라는 패닉 상태에서 아내가 보여준 달팽이 한 마리가 속삭이는 듯 하다. 바다를 건너 제주의 품안으로 돌아갈 꿈을 꾸라고 은퇴 후 다행이도 꿈같은 제주살이였는데 낙상사고로 6..

[낙상사고 투병기 58] 아파트 산책길 - 아내가 찍어온 사진으로 만족

아내가 집앞을 산책하고 찍어왔다. 휠체어를 탈 때 가보자고 한다. 그래, 휠체어를 탈 수 있는 그 날을! 퇴원할 때 주치의가 한 말 "휠체어를 타지 마세요" 걷기 연습에 힘을 쏟으라는 말이다. 휠체어가 있다고 집안에서도 타게 되면 그 만큼 재활이 늦어진고 한다. 그래서 휠체어를 빌리지 않았다. 침대와 식탁, 화장실만 억지로 가고 나머지는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손가락 운동과 발가락 운동을 하면서 누워있는 시간에 밖은 화창한 봄날이다. 만약 휠체어가 있다면 바깥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걷지도 못하는데 휠체어 타고 밖으로 나대면 케어하는 아내만 더 힘들게 된다. 아내가 아파트 산책길을 걷고 사진을 찍어왔다. 멋진 산책길과 장미꽃 밖에 가고픈 마음이 ..

[낙상사고 투병기 46] 점심 - 찐고구마도 혼자 먹지 못하는 안타까움

찐고구마와 찐계란, 토마토와 두유 고구마, 계란 껍질은 아내가 까준다. 왼손, 왼발 깁스의 외목발 집안 생활 한라산 낙상사고로 수원에서의 집안 생활 아내의 내조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 고구마를 까주는 아내의 손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다리 절단과 손 절단 중 어느 것이 더 불행할까? 나는 당연히 이동의 자유가 없는 다리 절단이 더 불행할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 손 절단이 더 불행하다는 결론이다. 이 뉴스가 갑자기 뇌리에 스친다. 왼손, 왼발 깁스한 몸으로 혼자라면 찐고구마와 찐계란을 어떻게 먹을까? 찐고구마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먹어야 하고 찐계란은 껍질째 깨서 대충 먹어야 하겠지 아내의 손길이 고맙기 그지 없다. 먹고, 싸고, 자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한 손으로 먹어야 하는 ..

[낙상사고 투병기 35] 미나리 - 미나리무침, 미나리전

침대에 누워있는 지내는 시간 아내가 뜯어온 미나리 미나리 무침, 미나리 전의 맛깔난 맛 대부분 침대에 누워있고 화장실과 식탁에만 간신히 움직이는 투병생활 따스한 봄날의 처량한 신세이다.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거나 멍하니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많다. 거상하고 있는 다리에 통증이 오는 시간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의 손에 미나리가 들렸다. 우시장천 산책길에서 돌미나리를 뜯었단다. 아파트 중간에 생태천이 흐르고 있어서다. 목발만 짚을 수 있어도 산책길에서 봄을 볼 수 있을 텐데 코앞의 풍경도 상상으로만 그려본다. 아내의 손에 들린 돌미나리가 반가운 이유이다. 동탄에서 돌마나리 맛의 진수를 느낀 후 제주에 흔한 미나리를 맛보았으나 향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수원의 우시장천 돌미나리 향이 훅하고 다가온다. 저녁에..

[낙상사고 투병기 15] 애기방울난초 - 2개의 방울 달린 애기가 되었다.

방울 달린 애기가 된 입원생활 뉘어주고, 씻겨주고, 입혀주고, 화장실 앉혀주고, 휠체어는 유모차 코로나 시대의 입원 생활 면회객도 올 수 없은 병실 오로지 아내와 함께였다. 얼굴은 꿰메고, 왼손, 왼발은 반깁스에 붕대 다리는 심장보다 높이고 수술 부위는 얼음 찜질 입원 2주 동안은 누워있는 침대생활 수술 후 며칠 간은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침대에 누운 아기일 따름이다. 숟갈질 외에는 혼자 하는 것이 없다. 병원용 소변기를 대주는 것 일회용 거품종이로 몸을 닦는 것 병원 가운을 입혀주는 것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것 화장실 앉는 것 모든 것이 아내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애기방울난초는 엄청 희귀한 난초이다. 땅 속에 있는 알줄기가 2개 있다. 낙상사고로 갑자기 애기가 된 사내 ㅠㅠ (202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