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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재활의 해 - 평범으로 향하는 험난한 길의 10개 스토리

풀잎피리 2023. 12. 3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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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염원 (2023-01-01)

 
 
2023 새해 첫날  수술한 다리로 산에 갈 수 없어 해안의 언덕으로 갔다.
부축을 받아 올라앉은 성벽에서 새해 일출을 손에 담았다.
재활을 열심히 할테니 평범한 삶을 달라고 염원했다.
 
하루 1만보 이상 걷기운동, 헬스장에서 다리운동을
빠짐없이 실천하며 의지를 다졌다.
피로가 온 몸에 누적되어도 걷고 헬스장에 갔다.
 
그 기록은 간절함이며, 눈물이며, 몸부림이었다.
날마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재활의 길은
그 날의 컨디션이나 몸 상태를 염려할 여유가 없었다.
 
보고싶은 꽃을 보는 것도 놓칠 수 없었다. 
재활과 꽃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밖에 없는 제주생활
재활의 당위와 제주살이 당위가 공존하는 시간들
 
2023년 열 가지 스토리를 추리면서 
나의 삶이 그린 한 해를 일별했다.
뒤돌아보는 시간들이 나에게 손짓한다.
 
내년에는 더 열심이 재활하라고
힘들고 외롭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의지하며 굳건해지라고
 
 

아기쌍잎난초 (2023-04-16)


새해의 약속, 함께 봅시다.
백일기도하듯 매일 1만보 이상 걷기운동
한라산둘레길을 걸어서 기쁘게 보았다.
 
  1. 아기쌍잎난초를 보러 한라산둘레길을 걷다   

새해 첫날 친한 꽃객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4월 중순에 피는 아기쌍잎난초를 함께보자고 약속했다.
약 100일 후의 봄날 한라산둘레길을 가야한다.
 
백일기도 드리듯 하루 1만보 이상 걷기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했다.
드디어 아기쌍잎난초가 꽃을 피웠고 함께 한라산둘레길로 향했다.
자신감 그대로 거뜬하게 걸었다.
 
손가락보다도 작은 아기쌍잎난초를 원래 작년에 보려고 하였으나
낙상사고로 보지못했는데 올해 드디어 본 것이다.
재활의 단기 목표가 성취된 순간이다.
 
 
 

섬오갈피 (2023-04-17)

 
손등과 허벅지가 가시에 긁혔다.
향기를 맡으며 새순을 똑 똑 부려트렸다.
나물을 맛보고, 장아치를 만들어 여름내 먹었다.
 
  2. 섬오갈피 새순을 따러 가시덤불 탐사   
 
제주에 가장 낮은 오름의 높이는 해발 3m
도로보다 낮은 오름 분화구에 섬오갈피가 군락을 이뤘다.
오름 투어 때 섬오갈피 나무를 보고 새순 날 때 다시 찾았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손등과 허벅지가 긁혀서 피가 났다.
섬오갈피 새순이 아주 실하게 올라왔다.
가시를 피해 줄기를 손에 잡고 스틱으로 잡아당겼다.
 
새순을 "똑! 똑!" 부러트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가방에 쌓이는 새순들을 보면서 땀을 흘렸다.
집에 와서 나물 무침을 맛보니 하루의 수고가 사라진다.
 
옆집에 한 봉지 준 후 나머지는 간장을 부어 장아치로 만들었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에 독특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제주돼지 오겹살에 섬오갈피 장아치는 궁합이 최고이다.
 
작년에 곰치 장아치를 맛있게 먹었는데
낙상사고로 수원에 있다가 내려오니 모두 상했다.
아까운 마음에 섬오갈피 장아치가 여름내내 상큼한 맛을 선사했다.


영실 (2023-06-07)


 제주월드컵경기장 트랙에서 재활의 발걸음을 떼면서
고근산과 영실을 바라보며 오르는 날을 고대했다.
2월1일 고근산을 오른 후 4개월 후 영실을 올랐다.
 
  3. 영실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다.  

낙상사고 14개월이 지난 6월의 맑은 날 아침
영실을 향하는 마음에 설렘이 증폭된다.
고근산 847계단의 목표를 넘은지 4개월만이다.
 
잘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영실 계단을 오를수록 자신감에 밀리고
영실의 풍경이 아침 빛에 아지랑이처럼 밀려온다.
 
산철쭉의 기대, 한라산을 마주본다는 설렘으로
발걸음을 떼고 떼어서 드디어 선작지왓 평원에 닿았다.
한라산을 바라보는 감회가 눈에 젖어오는 감상
 
재활의 땀과 눈물로 다져온 14개월이라는 시차가
붉은 산철쭉이 감동의 물결로 다가오는 가운데
내년에는 한라산 백록담을 오른다는 염원으로 귀결된다.
 
 

수술 다리 엑스레이 (2023-06-15)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선생님한테 야단 맞은듯
실망과 허탈함으로 미래가 휘청거린다.
어쩌란 말이냐! 내 정갱이뼈야!

 
  4. 가을의 철심 제거 수술이 무산되다.  

경비골 골절 수술후 금속판 제거 수술은 18개월 후로 예정되었었다.
그러나 6월 통원치료 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뼈가 어긋난채로 덜 붙어있었다.
따라서 예정되었던 올 가을에 철심 제거수술을 하지 못하고, 내년 봄에나 가능하단다.
 
청천벽력같은 소견을 들으니 크게 실망하고 허탈했다.
그렇게 열심히 재활했는데 아직 뼈는 엉성한 채로 연결이 덜 되다니
노년의 다리 골절이 던져준 고통이 커지고 커진다.
 
제주살이 마지막 해인 내년 봄에 침대에 누워있을 수도 없으니
제주살이 끝날 내년 가을에 수술하면 어떠냐고 물으니
내년 가을에 철심제거수술을 해도 괜찮단다.
 
그래서 제주살이의 발등의 불은 껐다. 
하지만 가을에 철심제거수술을 하면 통영살이에 변수가 생긴다.
60대 후반의 불확실성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이렇게 해도 문제, 저렇게 해도 문제
낙상사고가 던져준 시련이 재활뿐만이 아니었다.
내년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시련이다.
 


월드컵경기장 달리기 (2023-11-01)

 
헬스장 발판에서 제자리뛰기 하면서 염원했다.
월드컵경기장 트랙을 달리는 것을
그 염원을 실현한 날은 환희의 감격이었다.
 
    5. 월드컵경기장 트랙을 달리다.  
 
낙상사고 18개월이 지난 10월1일
월드컵경기장 트랙을 300m 달렸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매일 100m씩 더 달렸다.

300m(10/1), 400m(10/2), 500m(10/4), 600m(10/5), 700m(10/6)
월드컵경기장 트랙 1바뀌 700m 달리는데 6분 걸렸다.
800m(10/7), 900m(10/8), 1000m(10/9), 1100m(10/11), 1200m(10/12), 1300m(10/13)
 
그리고 10월14일 월드컵경기장 트랙 700m 두바뀌를 달렸다.
숨은 헐떡거리고, 다리는 저려오지만 가슴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매일 100m 업그레이드에 온 몸이 요동쳤지만 결국 해냈다.
 
발판에서 종아리운동할 때
런링머신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부러웠던 심정을 담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달렸다. 
 
보통의 삶으로 가는 길은 치열하다
절지 않고 걷고, 가끔은 달리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를 잊고 절박하게 재활하는 이유이다.
 
 

탐라뿔이끼 (2023-10-16)

 
이끼 종류의 1%도 안되는 확률의 뿔이끼
내 눈에 띄어 구굴에서 결국 이름을 찾았다.
탐라뿔이끼, 나니까 너의 이름을 불러준다.

  6. 무소의 뿔처럼 나니까 간다. 
 
"이끼와 함께(Gathering Moss)"를 읽고 이끼의 상생에 감동했다.
그 읽음은 또다른 인연으로 연결되어 "이끼도감"을 선물받았다.
호기심에 촉수가 닿는 대로 삶이 방향이 넓어졌다.
 
작아도 너무 작아 침침한 눈으로 어렵다.
자료도 부족해 구굴의 외국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무소의 뿔처럼 나니까 간다.
 
수많은 이끼 중 1% 안되는 뿔이끼를 발견한 것이 트리커가 되었다.
아직은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단계이다.
작디 작은 것이 아름답고,  예쁜 이름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본 이끼에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건조하면 잎이 바싹 말랐다가도 한방울 빗물에 잎을 펼치는
유연하고 끈질긴 삶을 재활의 길에서 닮고 싶다.
 
 

월라봉과 산방산 (2023-10-17)

 
1년 7개월만의 올레길
삶이 바뀐 재활자의 뻐근함
그 속에서 찾은 일상의 회복 신호 
 
  7. 제주올레 9코스를 걷다.  
 
제주살이 중 올레길만은 꼭 아내와 함께 걷고 싶었다.
책을 사고 마스코트를 사고 함께 걸었다.
그러나 함께 올레길 걷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3년 동안 8코스에 그쳤다.
그마져 낙상사고 후 올레길은 멈췄다.
그렇게 1년 8개월이 흘렀다.
 
8월에 9코스를 나눠서 가려 했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이제 아내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올레9코스
낙상사고 후 일상을 찾아가는 길이라 설렘이 크다.
 
마음을 다지고 자신감을 갖고 걸었다.
총 11.5km, 5시간, 2만4천보였다.
일상이 회복되었다는 충반감에 가슴이 벅찬 하루였다.

 

걷기운동 365일의 기록

 
걸어야 사는 길
나를 시험하는 길
절박하고 눈물겨운 길
 
  8. 하루 1만보 이상 걷기,  365일을 채웠다.  
 
뼈에 스트레스를 줘야 잘 붙는단다.
다리 힘을 길러야 절지 않고 걷는다.
하루 4만보를 걸어야 한라산에 갈 수 있다.
 
재활로써 걷기운동에 당위를 굳게 심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일부러 우회하고, 멀리 주차하고, 5천보 이상 걷고 되돌아왔다.
 
길 없는 숲을 걷고, 가지 못했던 길을 걸었다.
시무룩한 스스로를, 수술한 다리를, 아픈 허리를 위로하며 걸었다.
나의 의지를 꺾는 저항에 극렬히 반항하며 걸었다.
 
그렇게 1년 365일 연속 기록을 세웠다.
이제 시작의 카운트다운이 재설정되었다.
한라산 계단을 생각하며 의지를 새긴다.
 
 

초창기 낮의 헬스장에서 바라본 공연장과 월드컵경기장

 
재활로서의 헬스장 1년
운동하고, 사귀고, 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저녁이 있는 삶의 절실함이 크다. 

  9. 헬스장 1년 저녁의 삶이 절실하다.  
 
다리 수술 후 재활로써 헬스장을 의무적으로 다녀야 했다.
낮에는 꽃을 찾으며 1만보 이상 걷기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는 헬스장에 가서 다리운동 중심으로 100분 정도 재활한다.
 
1주일 6일을 빠짐없이 밤 시간에 헬스장을 다니다보니
공부할 시간, 사진 정리 시간을 내기 어렵다.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이고, 블로그 투병기 조차 올리는 것도 벅차다.
 
1주일에 한 번 헬스장 휴무인 날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웃 친구와 커피 한 잔 마시며 제주의 식물 이야기를 나누며 끽끽거리고
잠깐 시간을 이용해 책도 보면서 저녁의 맛을 보았다.
 
그 덕분에 올레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헬스 운동의 효과는 본 것이다.
그러나 저녁이 없는 삶이 계속되니 피곤이 덕지덕지 몸에 무리를 느낀다.
그렇게 눈물겨운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재활 시간의 느슨한 조율이 필요한 싯점이다.
빡센 1년의 재활이 지났으니 이젠 몸도 느긋함을 주어야한다.
내년에는 저녁의 쉼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자화상 (2023-12-14)

 
재활의 또다른 그림자
12월의 먹구름
허리야! 살려다오.

  10. 허리 고장으로 삼천포로 빠진 재활운동  
 
지난 11월27일 비가 내려 걷기운동을 하려고 고근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등산화를 꺼내려고 트렁크 문을 여는데
허리에 짜르르 통증이 흐르며 몸을 정지시킨다.
 
그 후 한의원에서 고슴도치처럼 침을 맞았다.
달리기, 헬스장, 올레길, 꽃탐사가 중지되었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평평하고 푹신한 월드컵경기장 트랙만 걷는다.
 
왜 허리가 굽어지는지, 왜 늙으면 손이 뒤를 잡는지 알았다.
다리 보다 심한 복병의 출현에 놀라고, 안타깝고, 무섭다.
허리를 펴기 힘들고, 의욕이 땅에 떨어졌다.
 
2주가 넘어서니 넋두리가 많아졌다.
눕기도 힘들고 일어나기도 힘들다.
된통 걸렀다. 내 삶 나도 모르겠다.
 
반야심경을 외우며 걸었다.
이끼의 삶을 이식하며 걸었다.
아랫배에 공기를 집어넣고 걸었다.
 
허리를 너무 무관심하게 대우했다.
척추만곡, 앞으로 굽히는 운동 절대 금지
의식적으로 허리를 의식하며 행동해야겠다.
 

처절한 재활의 현장 (2023-12-14)



2023 에필로그 ㅡ 이끼와 반야심경

원래는 넋두리 음성녹음을 재생하려 했다.
그러나 티스토리에서는 재생이 안되고 다운로드만 된다.
그렇다면 동영상을 만들어 재생하자.

1년간 투병일기 사진을 골랐다.
5분(300초)이니 사진 1장당 3초 계산해서 100장을 선정했다.
그러나 3초면 너무 길어 2초로 다시 계산하여 50장을 추가로 선정했다.

그리고 베가스 프로그램을 열었다.
시작 아이콘을 클릭하니 화면이 뜨다가 사라진다.
그러길 몇번하다가 프로그램 에러로 포기했다.

그래서 유튜브 사이트에 들어가 동영상 만들기를 클릭했다.
사진이 10장까지 업로드된다는 메시지에 픽 웃음이 나온다.
동영상이 뭐라고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도 허탈했다.

괜히 동영상을 생각하고 고생만 진하게 했다.
허리야 미안하다.
앉아 있음을 참아주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네

365일 1만보 걷기 데이터 정리도
엑셀 프로그램에서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고
생각이 나지 않는 엑셀 수식은 웹을 검색했다.

나의 몰입은 나의 고통을 잊는 방법이며
나를 깨어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마음 먹은 것을 쉬운 방법 보다는 어려운 다른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삶이었다.

나의 삶을 나 만의 방법으로 살고 싶다.
재활 과정의 중간 목표 설정도 꼭 지키려 노력했다.
재활 과정에서도 호기심을 부추기며 아픔을 참았다.

1년을 다시 준다해도 2023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처절하고 눈물겨운 과정이었다.
매년 선정하는10개의 스토리는 제2의 삶의 .zip이다.


 

12월10일 이끼와 반야심경.m4a
4.7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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