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발을 씻었다.
물에 담궈 불리니 허옇다.
허물을 벗는 벌레처럼...
수술한 다리로 계속되는 침대생활
언제 일어나 걷게 될까?
봄날의 나른함이 엄습하는 시간
반깁스를 푼 발이 며칠 간의 적응이 지났기 발을 씻는다 하니
아내가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김치냉장고 통을 주어왔다.
그 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발을 담궜다.
시간이 흐르자 발이 불어 물이 뿌여졌다.
뜨거운 물이 식어 다시 뜨거운 물을 부었다.
불은 발은 허옇게 곰팡이 슬은 것처럼 올라왔다.
문득, 제주 산양곶자왈에서 본 호랑나비애벌레가 떠올랐다.
입구에서 2.5km 곶자왈에 들어가야 볼 수 있는 호랑나비애벌레
누가 훼손하지는 않는지 몇 번을 2.5km 곶자왈 길을 왕복했다.
두 다리가 성할 때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데
이제 갓 깁스를 푼 발을 씻고 있는 현실이다.
내 발을 보면 징그럽다.
사람들은 나비 애벌레를 보면 징그럽다고 한다.
그러나 호랑나비의 아름다움이 거져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애벌레를 거쳐 수많은 절차와 어려움, 그리고 운(運)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철저히 재활하더라도 다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근접치까지 다다르는 것도 땀과 운이 필요한 것이리라.
호랑나비 애벌레와 번데기 사이 전용(前庠) 기간이 있다.
애벌레 특유의 몸 구조가 사라지는 미스테리한 공간
그 속에서 호랑나비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나도 침대에서 꿈을 꾸고 있다.
좌절이 아니라 침대생활이 준
나의 또다른 모습에 훗날 웃을 수 있도록
인생 후반에 맞은 뜻밖의 반전에서
그래 좋다. 이 기회에 또다른 나를 찾아보자.
나에게 격려하면서 발의 징그러움이 아닌 속시원함을 느껴보자 했다.
이 과정을 모든 골절환자는 겪었을 것이다.
그 동안 무심하게 홀대한 발이 아니던가?
당연하다 여겼던 것이 이제야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발을 씻는다.
아픔을 참고 껍질을 벗긴다.
넘 힘들어 몸에 땀이 난다.
불쌍한 내 발
그래,미안하다.
열심히 재활해서 딛게 해줄께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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