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갑자기 길을 잃었다.
수원에서 다리에 통깁스한 침대생활이라니
길 잃기로 되돌아 본 시간의 족적들
제주에서 읽은 책 "행복의 지도"
그 속에서 찾은 리베카 솔릿의 "길잃기 안내서" 글귀
수원의 도서관에서 길잃기 안내서를 대출받았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사랑의 장소, 범죄의 장소, 행복의 장소, 치명적 결정의 장소로는 돌아갈 수 있다.
장소야 말로 끝까지 남는 것이고,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고, 불멸하는 것이다.
(길 잃기 안내서 p. 164)
낙상사고로 골절된 다리를 수술한 후로 모든 상황이 바꿨다.
한라산에 다시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성
그리고 어떤 골절환자의 경우 소백산을 3년만에 올랐다고 하는데
그 때가 되면 제주살이는 끝나고, 나이도 많이 먹게 된다.
그러고 보니 지난 시절에 다녔던 장소들이야 말로 더 없이 귀한 추억이다.
보다 젊었을 때 멀고 힘든데 부터 여행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소오대산, 삼청산, 백두산, 차마고도, 몽블랑, 리시리, 레븐섬...
라오스, 운남성, 구채구, 황룡, 캄보디아, 터어키, 이태리, 아프리카, 동유럽...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괴산명산 35 ...
수술 다리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산과 여행지들
사진과 기억으로만 떠올리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가곤 한다.
무엇이든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는 그 감정의 일부에 새겨 넣어진다.
모든 사랑에는 저마다의 풍경이 있다.
사실 장소는 그 부재로써 우리를 사로잡고, 장소에 대한 감각으로써 또다른 생명력을 얻고
기억을 공기처럼 감싼 분위기로 기능하고
강렬한 감정과 연결됨으로써 마음 속에서 그 기억과 감정으로 소환한다.
(길 잃기 안내서 p.166)
길 잃기가 만든 장소 / 낙상장소, 탈출경로, 수술장소, 재활장소
물건을 잃은 장소 / 레븐섬 카메라가방, 밀라노 휴대폰, 북해도 카드키
눈물 날 삶의 장소 / 성남, 수원, 인천, 서울, 청주, 제주
오줌보 터질뻔한 장소 / 이스탄불
수통 잃고 갈증 속에 오른 산 / 설악 안산
일몰 찍다 넘어져 얼굴 깨진 장소 / 수리산
산개나리 찍다 물에 빠진 장소 / 관악산
계곡에 빠져 시끕한 장소 / 백암산
계곡 곳곳 섭렵한 장소 / 설악산
내 삶에 흩어진 장소의 조각들은 기쁨, 열망, 사랑, 슬픔, 낙심 등의 감정으로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가 가끔은 튀어나와 그 감정 속으로 물들게 한다.
힘들게 재활 투쟁하는 2022년의 시간 속에서 더욱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힘을 내어 재활운동하고 걷게 되면 또 다른 자산의 시간이 올 것임을 믿는다.
현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리베카 솔릿의 "길 잃기 안내서"에서 얻은 감상이다.
힘을 내야 할 시간들, 불확성의 등불,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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