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정말 큼직한 스토리들이 많다.
철심제거수술, 한라산등반, 몽골여행, 제주마무리, 통영이사
재활과 삶이 뒤엉키고 삶의 터전까지 바꾼 2024년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격정의 시간들이 아른거린다.
그 속에 철심제거수술 전후로 나에게 힘을 준 영국난장이방귀버섯이 있다.
사람닮은방귀버섯이란 이명처럼 그 모습이 나를 닮았다.
외로이 땀을 흘리는 재활자에게 미소를 띠어주고
이름을 물어본 버섯밴드에서는 수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 힘이 바탕이 되어 2024년의 엄청난 시간을 견뎌냈다고 본다.
연말에 10개를 선정 포슽하는 이 글에서
탈락한 스토리들이 아우성치는 것 같다.
그야말로 격정의 2024년이었다.
땅! 땅! 땅! 망치소리, 나온다! 나와!, 메꿔!
철심제거수술 1시간, 갈증과 허리통증 버티기 6시간
하루의 시간이 삶의 틀을 뒤흔든다.
1. 다리 철심 제거수술 (2024.02.16)
경비골 절심수술 후 22개월 만에 철심제거수술을 했다.
이틀 후 링거대를 붙잡고 새벽에 5층 로비를 2바퀴 걷고
아침에 1층 로비 35분, 점심 15분, 저녁 55분 총 5,460보를 걸었다.
철심제거 수술 후 3일 만에 목발을 짚고 퇴원했다.
2년의 재활을 인연으로 생각하란다.
마음의 철심이 무릎으로 꽂혔다.
그다음 날부터 목발을 짚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3월 2일에 28곳을 꿰맨 실밥을 제거했다.
다리를 감쌌던 보호대를 풀었다.
무장해제된 다리로 목발 없이 살금살금 걷기 연습이다.
마치 맨발로 걷는 느낌으로 온갖 통증이 무릎으로 휘몰아친다.
그렇게 힘들어도 매일 걸었다.
5월 1일 월드컵경기장을 100m 달렸다.
다음 날부터 100m씩 더 달렸다.
다리로 몰아치는 찌릿한 통증을 참아야 했다.
낙상사고 후 2년 19일
철심제거수술 후 2달 3일
1800m 고지의 꽃을 보고 한라산을 넘었다.
2. 한라산 종주 38000보 (2024.04.19)
철심제거 수술을 하고 월드컵경기장을 걸으며 재활에 매진했다.
걷는 풍경에 고근산이 있고, 그 뒤에 한라산이 조금 보인다.
한라산 1800m 고지에 댕댕이나무 꽃을 보고 싶다.
한라산 종주는 38,000보를 거뜬히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올해가 제주살이 마지막 해이다.
그래서 올 4월에 1800m까지, 6월에는 한라산을 넘자고 마음먹었다.
피나는 재활을 하고, 4월 19일 성판악에서 출발했다.
1800m에서 댕댕이나무 꽃을 보는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욕심이 붙어 150m를 더 올라갔다.
2021년 9월에 한라산을 오른 후 낙상사고로 오르지 못하다가
2년 반 만에 오른 한라산은 장관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라산 표지석에 줄을 서며 장사진을 친다.
그 속에 일원이 된 재활자의 가슴이 뛴다.
내친걸음이다.
성판악을 향하지 않고 관음사로 향했다
젊은 사람도 아픈 다리를 참으며 내려가는 관음사 코스이다.
낙상사고 후 한라산을 넘는 감회가 눈시울을 적신다.
11시간 40분, 38,000보의 한라산 종주는 선물이었다.
16박 17일의 종점에서 "실패한 여행은 없다".
내 핸드폰 잠김, 아내 핸드폰 분실
잃어버린 시간이 만든 몽골여행의 추억
3. 몽골 여행 (2024.06.26 ~ 07.12)
이번 몽골 여행의 단체 목표는
시베리안앵초와 피뿌리풀의 대군락을 보고, 은하수를 촬영하는 것이었다.
핸드폰은 S24 Ultra로 무장하고, 인터벌 타이머 릴리즈도 새로 구입했다.
하지만 시베리안앵초는 몇 포기에 불과했고,
피뿌리풀은 시기가 늦어 꽃이 진 것이 많았다.
위안이라면 분홍바늘꽃 군락과 털복주머니란을 보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여행 초반 나의 핸드폰이 잠겨져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의 핸드폰을 빌려 중요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여행 종반에 아내의 핸드폰을 도난당했다.
나의 핸드폰이 잠긴 3일 동안
아내의 핸드폰으로 찍은 나의 일상도 사라졌다.
가장 좋은 핸드폰이 잠길 줄이야 상상이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패한 여행은 없다고 믿는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몽골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가 이미지로 그려질 것이다.
층층고란초, 공작고사리
한라산의 선물을 받은 감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험한 산을 타고 위험한 계곡을 오르며 비지땀을 흘린 보람이다.
4. 층층고란초와 공작고사리를 보다.
꽃을 탐사하는 것은 체력이 관건이다.
제주오름을 오르고, 계곡 바위를 넘었다.
발의 유연성과 비틀어진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 재활은 변화무쌍해야 했다.
제주오름은 지독한 인내를 견뎌야 했고
제주계곡에서 낙상한 사람의 계곡탐사는 위험했다.
그래도 넘어야 하는 재활자의 처절함이다.
바라만 보던 바위 암벽을 밟았고
깊은 계곡의 폭포에 몸을 담갔다.
보고 싶고 아름다운 양치식물은 그 간절함의 선물이다.
재활도 인연이라면 꽃도 인연이다.
다치고 싶은 사람은 없고, 꽃도 보고 싶다고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낙상의 질곡도 귀한 꽃도 내 삶의 인연이다.
살핀오름과 붉은오름을 오르고
탐라사철란의 아픔을 본 후
어승생저수지 앞에서 벌린 한밤쇼
5. 한 밤의 방랑자 (2024.08.30)
매일 소나기가 내려가지 못했던 살핀오름과 붉은오름
소나기가 내리지 않는다는 예보로 결행했다.
삼별초 항쟁의 숨결을 느낀 오름 투어였다.
하산 후 계곡에서 송이풀을 보고
탐라사철란을 찾아갔더니 누가 꽃대를 꺾어 없앴다.
힘들게 찾아간 풍경에 아연실색했다.
혼자의 욕심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것이
소위 예쁜 꽃을 찾는 사람의 행위란 말인가?
가뜩이나 늦은 시간을 쪼개 왔는데 실망하여 맥이 탁 풀린다.
어승생저수지 입구의 1100도로까지 힘들게 걸어왔다.
시간을 보니 16:49분이었다.
제주행 버스는 오는데 중문행 버스는 오지 않는다.
택시 회사에 전화하여 택시를 보내달라고 해도 배차여유가 없단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어두워진다.
할 수 없이 제주 지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두 사람 모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서귀포 지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회식 중이란다.
그 후 제주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달려온단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며 풀벌레 소리를 듣는 기다림이다.
한 시간 후 깜빡이는 불빛을 보고 몸을 실었다.
제주 계곡에서 불현듯 찾아온 위험을 제주 인연으로 물리쳤다.
여름 내내 한라산 소나기
산벌른내 1박의 꿈은 사라졌다.
동탄에서 가져온 오리털 침낭은 제주 지인에게 주었다.
6. 한라산 소나기에 진한 아쉬움
서귀포 신도시에서 제주살이 하면서 옆집 사람과 진한 인연을 맺었다.
산과 식물을 좋아하여 자주 만나 커피를 마시며 떠들면 금방 시간이 간다.
함께 수많은 시간을 보낸 중에 산벌른내 1박을 하자는 약속을 했다.
동탄에서 오리털 침낭과 거위털 잠바도 가져왔다.
첫해는 그 지인의 사정으로 기회를 놓혔고
2년 동안은 낙상사고로 내가 기회를 낼 수 없었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여서 수시로 날씨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제주 날씨가 아열대로 바뀐 듯 한라산은 연일 소나기 예보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한창이다.
날이 괜찮다고 하여 삼형제오름을 올랐는데
소나기가 내려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고
한라산에서 빗속을 탈출하는 서바이벌 경험도 했다.
그래서 한라산이 맑다고 해도 모든 준비를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매일 소나기 예보에 짜증까지 났다.
결국 올여름에는 한라산 조차 오르지 못했다.
가을이 오니 이제 한라산은 추워서 야영할 수가 없다.
제주살이 짐을 정리할 때 오리털 침낭을 지인에게 주었다.
한라산 1박도, 귀한 꽃도 신기루가 되었다.
7. 제주살이 마무리
제주살이 6년의 마감이 10월 초로 다가왔다.
코로나 2년, 낙상사고 2년 제주살이의 시간이 악재의 연속이었다.
혼자 탐사하고, 혼자 재활하는 시간이 주가 되었다.
재활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탐사를 시작했다.
제주살이 목표인 오름과 올레길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올레길은 10코스, 제주오름은 223개에 정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2024년은 제주올레와 제주오름에 올인했다.
제주 올레는 아내와 함께 걸었다.
11코스부터 23코스까지, 그리고 가지치기 한 코스까지 올 하반기에 집중되었다.
추자올레는 여객선의 파업으로 더 늦어졌다.
9월 말이 되어서야 1박 2일로 추자올레를 마쳤다.
제주를 떠나기 3일 전 우도올레를 마쳐 올레 27코스를 모두 걸었다.
제주오름은 우도올레에서 우도봉과 알오름이 마지막이다.
우도봉을 올라 알오름을 내려다보고 산행 루트를 잡았다.
우도알오름 사면의 띠밭을 뚫고 제주오름 335개를 기록했다.
낙상사고 후 제주오름 112개 오르고, 제주올레 17개 코스를 걸은 것이다.
제주 오름 중 한라산 보호구역 밖에 있는 오름은 모두 올랐다.
날씨 불문, 가시덤불 불문으로 극한의 악조건을 이겨낸 동네 오름이다.
야생화, 양치식물, 이끼류를 찾는 취미도 열중했다.
올해가 마지막이란 일념으로 가능한 시간을 쪼개고 쪼갰다.
그동안 못 보았던 귀한 나무, 풀, 고사리, 이끼류에 집중했다.
사실 제주살이의 인연은 야생화 탐사에서 시작되었다.
낙상사고로 재활하는 동안 야생화는 전혀 포슽하지 못했다.
돌주름곱슬이끼, 새깃아재비, 차걸이난, 해국을 야생화 전시회에 출품했다.
제주에서 육지로 이사 가는 것
낙상사고 후 제주를 탈출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녹동행 여객선에서 본 일몰처럼 제주의 마감시간은 아등바등 이었다.
8. 제2의 제주탈출
제주를 떠나는 전세계약을 마치고 통영의 살 집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영에는 전세가 나오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내 처지에 맞는 집을 찾고 찾았다.
드디어 8월 26일 전세계약하고, 10월 4일 이사를 확정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이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제주의 짐을 모두 가져갈 건가? 모두 팔고 자동차에만 싣고 갈건가?
제주살이 초기 제주에서 하나하나 물건을 구입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이삿짐센터와 계약하여 모두 가져가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전화 상담과 실제 계약하려 하니 많이 달랐다.
짐이 많다느니, 이사 뱃삯과 이틀의 기간을 내세워 터무니없이 많이 불렀다.
여러 업체를 알아봐도 역시 같은 행태라 힘들어도 자동차에만 싣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냉장고, 김치냉장고, 세탁기는 다음 전세자에 넘겼다.
나머지 식탁, 의자, 거울, 책꽂이, 화장대, 청소기, 빨래건조대는 다음 전세자에게 그냥 주었다.
이불, 옷, 신발, 책은 택배로 보내고, 나머지는 자동차에 싣고 가기로 했다.
이사 박스를 사고 짐을 싸고 택배회사에서 발송하는 절차를 2회나 했다.
그 사이 올레도 걷고, 오름도 오르고, 꽃도 찾았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시간들이 너무나 빡빡했다.
정한 기간은 너무나 빨리 왔다.
그렇게 짐이 줄어들었다고 안심했는데 짐이 화수분이다.
자동차에 싣는데 카메라가방과 등산배낭이 짐칸에서 운전석 옆으로 옮겨져야 했다.
마지막 날 우체국 택배로 두 박스를 보내고, 차에 실지 못한 물건은 버렸다.
비싸도 이삿짐센터에 맡겼어야 했는데
통영에 가서 가전제품 등을 새로 구입하거나 당근 구매해야 하는데
마음의 갈등이 삶의 회오리바람처럼 들이닥쳤다.
제주항을 출발하여 녹동항을 향하는 여객선에서 한라산이 멀어진다.
한라산의 구름이 진한 6년의 추억처럼 짙게 드리워졌다.
서쪽은 붉은 태양이 구름 허리티를 매고 몸을 바닷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의 풍경이여, 안녕!
제주를 탈출하여 통영으로 가고 있다.
통영의 시간아! 나의 허기진 마음에 단비를 뿌려다오!
버깃리스트 2단계 통영살이
어려운 난관을 뚫고 드디어 해냈다.
이륙의 과부하도 힘찬 시간으로 바뀔 것이다.
9. 제2의 지방, 통영살이 시작
녹동항에서 밤길 3시간을 달려 통영대교를 건넜다.
네비가 알려주는 길로 헤트라이트가 비춘다.
미지의 세계로 닻을 내린 시간은 밤 11시 40분이었다.
이튿날 아침 통영의 풍경을 마주했다.
아침 빛에 긴 그림자가 통영 바다를 향해 서있다.
이제부터 재활하는 다리로 통영의 산과 섬을 걸을 것이다.
그 준비의 시간이 제주살이 초기의 시간과 닮았다.
청소기를 돌기고, 걸레를 밀며 집안 청소에 땀을 쏟았다.
미리 구입한 세탁기, 냉장고, 김치냉장고, 스마트 TV, 가스레인지가 설치되었다.
가스가 연결되서야 온수가 나왔다.
엊저녁 밤늦게 도착하여 냉수로 샤워한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인터넷을 연결하니 TV 를 볼 수 있고, pc를 할 수 있다.
의자가 없어 서서 밥을 먹었던 첫날이 가고 이어서 침대가 배달되었다.
침대가 없던 제주생활의 업그레이드 살림이다.
거울, 책꽂이, 의자를 당근 구매하고, 마트에서 살림 도구를 준비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들었다.
그래도 고생한 대가는 새 가전제품이다.
제2의 지방살이, 이렇게 시작했다.
통영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한려수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산과 꽃에 섬을 추가하는 통영살이의 꿈
산과 섬, 그리고 인연의 시간이 통영을 관통하고 있다.
10. 산과 섬 그리고 인연
통영에 오니 제주와 다른 것이 많다.
습기가 적고, 산에는 가시덤불이 거의 없다.
현무암 대신 화강암이 산을 만들었고, 풍경이 좋다.
통영지맥, 거제지맥, 신거제지맥이 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의 진부령~대관령 구간 10일 여정을 실패한 후
바쁜 삶이 쫓겨 40년이 지나 다시 이는 설렘이다.
시니어의 몸으로 낙상 후 산을 찾는 재활
산에 올라 바라보는 산과 섬의 이름을 공부하면서
익힌 이름에 정을 붙이고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전한다.
이런 내 마음에 통영의 새 인연들이 만들어준 기회가 고맙다.
보고 싶었던 개차고사리, 비진도콩, 통영볼레나무를 보았고
흰용담, 흰감국, 다북개미자리, 다북바위솔, 진주바위솔, 긴포마편초를 익혔다.
아내와 주 1회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며
통영, 거제, 고성의 산책길을 걷는다.
통영살이 3개월, 바빴지만 제주보다는 여유롭다.
옷과 생활 물품은 검소하게
음식과 여행은 실속있고, 풍성하게
이러한 가치관이 지방살이를 가능하게 한다.
에필로그
통영의 굴 생산량은 국내산 굴의 80%를 차지한단다.
덕분에 통영의 맛에 굴이 추가되었다.
제주에서 삼겹살 맛을 알았다면, 통영에는 굴 맛을 알았다.
싱싱한 굴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통영에서
삼겹살, 굴, 묵은지 3박자가 통영의 맛을 대변한다.
굴밥, 굴국, 굴순두부, 굴라면 등 겨울의 굴찬치가 이어졌다.
통영은 거제와 고성의 중간에 있다.
그래서 3곳을 두루 여행하는 통영살이다.
걷고 오르고 탐사하는 동안 아내와 함께할 곳도 찾는다.
제주살이 경험이 통영살이에 더 나은 방향을 잡게 한다.
통영살이도 벌써 3개월이다.
그러면서도 "만족"이란 결론이 흐뭇하다.
'♪ 산, 여행, 야생화 >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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