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살이/한라산 낙상사고

[낙상사고 투병기 170] 핸드폰의 고백 - 주인의 터치에 난 방긋 웃는다.

풀잎피리 2023. 2. 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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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에서 멧돼지의 독백을 읽었다.
2014년 청성산의 멧돼지새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의 핸드폰의 고백을 그렸다.

멧돼지 새끼들 (2014년)



찰..칵..
내 주인이 휘청하며 쓰러지며 굴러갔다.
나는 주인의 손을 떠나 너덜지대 돌틈에 내 팽개쳐졌다.
꿍!

돌틈에 날개를 펴고 엎어졌다.
다행이 나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내 주인은 더 멀리 굴러갔다.

10분 후 주인이 나를 찾아왔다.
얼굴은 깨져 피투성이 상태였고
다리가 부러졌는지 몸을 엉덩이로 질질 끌었다.

나는 주인을 향해 몸을 반짝 빛냈다.
주인이 나를 잡더니 내 몸을 터치한다.
누군가에게 낙상사고를 알리는 것 같다.

(2022-04-01)
.
.
.
찰..칵...
나는 우시장천 산책길을 매일 구경한다.
주인은 우시장천의 모습을 내 머리에 저장한다.

목발 짚고 산책하는 길
아름다운 사람들과 생태천의 모습
주인의 내면 세계가 나의 뇌에 박힌다.

사진과 일기에서 느끼는 주인의 마음
걷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
슬기로운 은퇴생활이라 생각했던 60대의 대반전에 대한 안타까움
.
.
.
따각..따각...
주인의 터치가 좋다.
나에게만은 속마음을 가감없이 고백하는 주인이 좋다.

요즘 나의 이동거리도 짧다.
내가 보여주는 웹소설을 보면서
주인이 끽끽거리며 웃는 모습도 다행이다.

헐!
어느 날인가, 주인은 웹소설에서 멧돼지가 독백하는 것을 보더니
대뜸 나에게 고백을 하라고 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주인의 마음이야 오죽하랴....들어주자.

내 몸도 나이를 많이 먹었고, 걸친 옷도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내 주인의 즐거움을 찾아주는 역할에 충실하자.
이런 나를 주인은 끔찍이도 생각하는 것 같다.

(2022-09-01)
.
.
.
끈적, 끈적
주인의 몸도 나아져 산책길을 왕복 2km를 매일 걷는다.
그러던 어느날 목발을 세우고 길 옆 풀숲에 다가갔다.

캐나다된장풀이 열매가 다닥다닥 보인다.
주인이 지난 여름에 꽃을 보고 밴드에 이름이 물었던 나무다.
주인은 도둑놈의갈고리처럼 생긴 열매를 찍으려나 보다.

그런데 그 끈적끈적한 열매가 주인의 옷에 달라붙었다.
그 순간 주인이 한 마디 내뱉는다.
"이런 된장!"

나의 헌옷에도 끈적한 열매가 붙었다.
나도 멧돼지 절규처럼 외쳤다.
"캐나다된장풀 이 놈.....쿠에엑!"

(2022-10-03)

낡은 핸드폰 커버에 붙은 캐나다된장풀 열매 (2022-10-03)

 

옷에 붙은 캐나다된장풀 열매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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