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여행, 야생화/생활

[도서] 왕은 사랑한다. 1.2.3. - 우정, 사랑, 질투가 뒤범벅된 도가니

풀잎피리 2011. 10. 3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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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한달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났다.

휴일없는 강행군 속의 나날들

출퇴근 시간에, 근무의 짬틈에서, 퇴근후 밤늦도록...

아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무신정권에 무너진 고려말의 어수선한 정계

몽고 땅 대도(현 뻬이징)에서 이뤄지는 인질과 계략의 세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의 기록을


흠뻑 빠지며, 흥분하며, 감동하며, 개탄하며....

공성전에서 200년전의 스페인 역사를 읽었다면

왕은 사랑한다에서 700년전의 한반도 역학관계속의 우리의 역사를 상세히 보았다.

 

왕의 질투, 왕의 욕망, 왕의 사랑
왕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삶이 그려집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별빛에 물드는 1000년전의 세계에 빠지고 싶습니다. 2011/10/03 11:11:13 

이렇게 신청한 올리뷰에 당첨되어 재미있는 대하소설을 읽게된 것이다. 

 






  

[등장인물 주요 가계도]

현재의 국왕을 지지하는 국왕파와 원을 복위시키려는 전왕파가 반목하여 물밑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고

각 파벌이 원나라 황실과 조정에서 누구와 친분을 맺고 후원을 얻느냐에 따라 대립이 더욱 폭넓고 복잡해졌다.

건강이 시원찮은 황제의 후계문제에 제국의 유력 인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3권 p276)

 



[고려와 몽고]

고려의 세자가 원에 인질로 잡혀가고,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고려의 왕이 되고

고려는 원에 공녀를 바치고, 원나라 사람이 고려에서 관리가 되어 횡포를 부리고

우리의 쓰라린 역사가 대하소설속에 널려있다.

 






  

[린(王潾) : 후일 수정후]

순간 소년이 린의 입을 와락 막고 천장까지 쌓아 놓은 물건들 틈에서 숨을 죽였다.

코끝에 훅 끼치는 난향을 맡으며 린도 따라 숨을 죽였다.

한참이나 인기척이 사라진 후에야 소년이 손을 떼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조용히 해, 난 도둑으로 몰려서 가구소에 잡혀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묻는 말에 대답하라."

"여기 계속 있다간 행랑 주인에게 들키고 말걸. 난 나갈테니 정 듣고 싶거든 따라오렴."

"잠깐, 아직 그 자가 밖에 나올지로 모른다."

린은 성급히 문을 열고 나서려는 소년의 가슴팍을 밀어 말렸다.

순간 헉하고 소년이 급하게 숨을 내쉬었다.

뭐지? 린은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그가 주춤한 사이 잽싸게 뛰쳐 나갔다.

뒤따라 나가긴 했지만 린은 소년을 잡지 못했다.

잡으려면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고,

형의 일행에게 쫒기고 있었으니 그냥 보내면 안 될 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발이 바닥에 심긴 듯 멍하니 섰던 그는,

당황스럽고 어처구니없고 얼떨떨하여 소년의 가슴을 밀었던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만 반복했다. (1권 PP41-42)



 

[원(王 言原 : 몽골이름 이질 부카, 후일 충선왕]

원은, 그녀의 이름에 착안해 산호로 장식한 칼을 선물하길 잘했다고 속으로 자찬했다.

장검이라면 그녀를 더욱 기쁘게 했겠지만, 평소에 차고 다니지도 못할 환도보다는

가슴에 늘 넣고 다닐 작은 칼이 훨씬 선물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 작은 칼집에는 분명 그녀의 향기기 밸 것이다.

아마 비녀나 향낭을 준다면 결코 장도만 한 대접을 받지 못하리라 원을 확신했다.

"종실의 귀인들이 몸 쓰는 일을 좋아하다니, 너희 둘은 참 별난 녀석들이다.

사예나 기마술이면 모를까, 검술에 수박까지 배우다니, 너희랑 있으면 감정이 메마르겠다,

린, 내 금을 내오너라."

원이 마루에 걸터앉으며 말하자, 린이 방 안에서 거문고를 들고 나왔다.

서화와 탄금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세자가 한 곡 멋스럽게 연주하고는,

뜰 한 가운데 멍하니 서 있던 산을 내려다 보았다.

"귀부인들은 집에서 일꾼들을 다스리고 피륙을 생산하며 아이를 기르는 일에 매진하면 되지만,

무릇 사내라면 풍류를 모르면 안된다.

산, 너는 부인의 일을 모르고 사내처럼 행동하지만 오직 몸을 쓰는 기술만 익히니,

제대로 된 숙녀도, 제대로 된 선비도 아니지 않니?

린에게 검과 활을 배우려는 열의의 백분의 일이라도 음률과 시에 할애함이 어떠냐? (1권 PP134-135)     

 



[산(王珊) : 후일 현애택주]

산은 세자의 입가의 스치는 비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생긋 웃어 보인 그녀는 방안에 들어가더니 이내 가느다란 피리를 들고 나왔다.

"위아일휘수 여청만학송(爲我一揮手 如聽萬壑松 : 이백의 시 가운데 한 구절,

나를 위해 타 준 곡이 소나무 무성한 골짜기의 바람 같다는 뜻)이니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구나. 비록 너만 한 재주는 없지만 말이다, 원."

피리 부는 끝, 겹으로 된 서에 그녀가 살포시 입술을 대었다.

진동하는 서가 내는 음이 공기를 타고 퍼져 가 뒤채의 작은 뜰을 메웠다.

밝은 낮에 듣기에 음색이 어두워 어딘가 조화롭지 못했으나,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애잔함이 그녀가 결코 서툰 연주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피리를 부는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원이, 그녀의 연주에 맞춰 무릎에 놓은 금에 술대를 가져갔다.

구정의 소란한 훈련에 상반되게, 뒤뜰의 거문고와 피리 합주가 몹시 평화로웠다.

린은 기둥에 기대어 연주에 몰두한 두 사람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1권 PP135-136)

 



[우정]

"우린 셋 다 아비의 뜻을 제멋대로 어기는 악동들 아니냐." (원이 친구들에게)

"꼭두각시, 망석중이, 남의 뜻에 우왕좌왕하는 인형입니다." (산이 아버지의 강제결혼에 반발하여)

남장을 하여 알게 된 산을 사이에 두고

원과 린의 속마음 속엔 끌림이 있지만

겉으로 나타난 더 큰 우정이 셋을 한데 묶는다.

고려시대, 남녀유별이 없는 시대, 흥미로운 서막이 열렸다.

 





  

[팔관회] 

팔관회(八關會), 음력 11월 보름, 추위 속에서 행하는 고려 최대의 국가 의례

천령(天靈)과 오악(五嶽), 명산대천(明山大川)과 용신(龍神)을 섬김으로써

부처를 공양하고 신을 즐겁게 하는 자리[供佛樂神之會]

태조의 유훈에 따라 몽골에게 쫒겨 강화로 피난을 가서도 지켰던 행사였다.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것은 밤새도록 마음껏 흥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낮의 엄격한 의례가 마무리되면 왕을 위한 천세 소리가 우레처럼 울리고,

악기들이 저마다 고유한 음색을 뽐내는 속에 그윽한 향등과 별빛 아래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술을 즐겼다.

백희가 궁 안 왕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을 위해 서도 거리에서 펼쳐져 이 날 밤은 낮과 다름없이 북적인다.

고대 제천의 맥을 이은 축제인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나오니 장사꾼들도 와글와글 음식과 음식을 팔고, 사이좋게 광대들의 춤과 노래, 재주를 구경한다.

웬만한 일탈도 눈감아 주는 꿈같은 하루, 남녀노소 들뜨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젊은이들은 특히나 설렌다.

(1권 pp301-302)

 


[몽고의 영향]

'마마'라는 존칭은 궁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왕과 왕비에게만 쓰고

세자와 세자비를 높여 부를 때는 '마노라'라고 부른다.

임금의 진지는 '수라'라고 한다.

'아기'라는 말이 왕족이나 귀족의 처녀를 일컫는 몽골어이며

'아가씨'라고 부르는 일이 고려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권 p315)

 

혈연적으로 우리나라는 몽고와 관련이 깊다.

몽고반점도 그 하나이다.

그러나 몽고의 침입에 우리는 피를 흘리고 신음했으니.... 


 



  

[질투]

말의 배를 힘껏 걷어찬 원은 쏜살같이 왕성으로 향했다.

마치 무언가에 쫒겨 도망가는 것처럼 그는 거듭 말을 채촉했다.

사실 그는 도망치고 있었다.
곧 그를 찾아내 달려올 린에게서, 린을 보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 같은 자신에게서,

가슴을 먹구름처럼 뒤덮는 불길하고도 낮선 증오감에서.

린, 너는 여자를 원하는 마음이 없다고 내게 분명히 말했다.

원은 고삐를 쥔 주먹에 피가 나도록 힘을 주었다.

그 이유는  너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지.

날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네겐 여자가 아예 필요 없었던 거다.

그런데 넌 내가 모르는 사이, 나만큼, 나보다도 더 사랑하는 여자를 만들었다.

그것도 내가 사랑하게 된 여자를!

진실로 원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내게 충고했던 사람이 너였던가?

그렇다, 나는 후회하게 됐다.

네 누이와 혼인하는 바람에 산을 가지지 못하게 된 걸 후회한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진실로 원하게 된 걸 후회한다!

그런데 린, 알고 있니? 날 후회하도록 만든 사람은 바로 너라는 걸!

네가 산에게 입을 맞춘 순간, 난 처절하게 후회한단 말이다!

린, 나는 이대로는 예전처럼 널 못 볼 것이다.

나만을 바라보던 네 강직한 눈빛이 산에 대한 연심으로 흔들리는 걸,

네 금욕적이고 청정했던 입술이 산의 숨결을 머금은 채로 내게 말하는 걸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네게 뺏긴 그녀 못지않게 그녀에게 뺀긴 널 볼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네가 보고 싶다! 미운 만큼 더 보고 싶다.

널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못하는구나. 차마 못 보겠는데 보고 싶다.

난 네게 그토록 마음을 주었단 말이다!

이것만큼 후회스러운 일이 또 있겠나 싶다.

린,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제 네 앞에서도 가면을 쓰고 거짓 웃음을 웃어야겠다.

속내를 깊이 묻어 두고 차디찬 얼음으로 단단히 무장해야겠다.

그러지 않고는 태연스레 너와 마주 서지 못할 테니.

그러니 이제부터 네가 보는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건 모두 너 때문이다.

그걸 알아둬라. 린!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건 모두 네가 날 후회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란 걸!

자기혐오로 몸서리치며 원은 더욱 빠르게, 더욱 거칠게 말을 몰았다. (1권 pp 535-536)  

 


사랑스러운 것들, 너희의 그 맑고 깨끗한 얼굴 못지않게 고결한 품성을 사랑한다.

더럽히려고 애써도 쉬이 더러워지지 않는 보석 같은 내면을.

나쁜 것들,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어.

너희가 존중하고 아낀다는 나를. 너희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하게. 원은 음충스레 빙긋 웃었다. (2권 pp363-364)

 




[질투의 끝]

원의 의해 린은 납치되어 린치당하고 반송장 상태로 색목인의 노예로 팔려가고

산은 원의 궁에 감금되어 빛없는 세월을 보낸다.

원은 점점 괴팍해지고, 원의 제거하려는 세력의 음모는 계속된다.

그러던 중 단의 도움으로 산은 탈출하여 타클라마칸으로 린을 찾아나선다. 

 






  

[음모]

"평민이란 몸은 무겁고 입은 가벼운 족속이올시다.

눈앞에 떨어진 푼돈과 쌀 한 줌에 간을 빼어 줄 부류이지요.

그들은 애초에 누가 왕이 되건 관심없습니다.

지금 세자를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곧 몽골왕자가 고려를 오랑캐의 속국으로 만든다며 비난할 것입니다.

오늘 입은 고통을 두고 내일이면 '왜 아플꼬?' 묻는 놈들이니까요.

우리가 신경써야 할 사람들은 그런 바보들이 아닙니다.

왕을 만드는 자들, 우리를 도와 공을 보위에 올릴 자들을 어르고 달래고 규합하여 우리 팔 안으로 도닥여야지요.

"누구를 어떻게 규합해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두둑한 가산과 자신들을 보호해 줄 왕을 원하는 사람들요.

그리고 그 작업은 이미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나 방영이 이미 성상께 매우 가까워져 있지 않습니까."

"그럼 나는 무얼 하면 좋겠는가?"

"우리는 세자를 흔들 약점을 잡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의 역할이 큽니다."

(2권 pp25-27)


 

"왕전을 세우기 전에 내 자리를 탄탄히 닦아 놓는 것이다.

왕도, 왕을 좌지우지하는 환관들도 모두 내 손아귀에 넣는 것이지.

그러면 왕이 죽고 왕전이 뒤를 이어도 여전히 고려는 나의 것이니까.

그래서 네가 필요한 것이다. 부용. 너는 왕을 엮는 실이 되는 거야.

그 실을 잡아당겨 조종하는 사람은 바로 나. 송인이지. 내 말을 알아듣겠느냐?"

"너는 왕을 공격할 내 최고의 무기다.

네 몸뚱이면 주색에 빠진 왕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왕은 힘이 넘치는 젊은 사내가 아니란다.

쉰이 넘은 노인이 네 싱싱한 몸뚱이를 만족시켜주겠느냐? 어림도 없지.

왕에게서 네가 즐거움을 얻는 게 아니라 네가 왕을 즐겁게 해 줘야 한단다.

그러려면 부단히 단련하고 연마해야지.

지금은 단련중이란다. 내게 보여줄 수 있겠지?"

(2권 pp127-128)


 

왕보다 환관이 더 힘이 센 역사는 중국에서도 많다.

똑똑한 왕보다는 시원찮은 왕을 세워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는 가신들

몽고에 핍박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영달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아첨꾼들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렇게 현대까지 굴러왔다. 

 





  

[토이(연회)]

그(테무르)가 베푼 토이(연회)는 성대하고도 질펀했다.

몽골인의 연회는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다.

연회의 주인이 보통 귀족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수많은 재상들과 외교사절들,

각 부족의 노얀(부족, 씨족의 족장이나 귀족)들과 다른 울루스에 인질로 온 왕공들,

서역에서 온 부유한 상인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를 탐색하며 자기편과 자기편이 아닌 사람을 걸려내는 작업을 부단히 한다.

몽골어와 투르크어, 파사어(波斯語 : 페르시아어)를 동시에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히 떳떳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교류장, 그것이 토이다. (2권 p106)

 



[몽골에서의 원의 역할]

테무르가 원을 위해 마련한 토이에서 원은 사교성과 언어의 재능으로 분위기에 잘 적응했다.

카이샨도 원에게 "넌 나와 같은 냄새가 나, 이질 부카, 늑대의 냄새가.

언젠가 내가 내 일족을 짓밟고 올라서는 날이 온다면 널 내 적이 아니라 동지로 두고 싶다!"고 했다.

이렇듯 원은 몽골에서 고려를 지키고 보호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몽고 침입에서 내가 몰랐던 사실은 아래의 글이다.


『현재, 제실의 반란 도당에게 국토를 유린당하는 고려를 구하고자 팔을 걷어붙인 사람은 왕이 아니라 세자였던 것이다.

일전에 일어났던 동방3왕가의 반란을 주동자인 나얀을 잡아 죽임으로써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했던 쿠빌라이는,

카운치가의 카다안[哈丹]이 다시 들고 일어남으로써 골치를 앓게 되었다.

황제의 군대에서 밀려난 카다안이 고려의 국계를 넘어 들어가 몇 개의 성을 무너뜨리자

고려 국왕은 백성을 내버려둔 채 냉큼 강화로 피난가기 위해 보따리를 쌌다.

그 때 나선 사람이 이질 부카로, 황제에게 원군을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2권 p108)



'제실의 공주가 속국의 왕비로 가는 일이 없는데 유독 고려만이 특별했다'고 한다.

원은 이러한 혈연관계를 이용하여 몽고에서 적절히 처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만년에 다시 복위해서도 몽고에 머물며 편지로 고려를 다스려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권력(權力)]

"카이샨이 말했었지요. 이질 부카 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미녀나 보석보다 귀한 차와 서화를 내놓으라고.

어떤가요? 성공했나요?"


"다스릴 나라도 없는 왕에 불과한 제 마음을 얻는 것이

타기(答己)님께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예, 성공하셨습니다."


타기 카툰, 황제의 형수이자 카이샨의 어머니인 그녀는

황태후가 될 야심으로 풍만한 가슴을 꽉 채운 여걸이다.

"돌려 말하지 않겠어요. 이질 부카님, 내 편이 되어 줘요"

"이미 타기님 편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 카이샨이 아닌 오직 나만의 편을 말하는 거예요."

"황후의 자리는 이미 지났습니다. 똑같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죠."


죽은 아버지나 형의 아내를 취하여

혈족의 재산을 지키고 미망인을 보호하는 관습을 가진 몽골인으로서,

테무르가 타기를 황후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훗, 나도 알아요. 내가 원하는 건 황제의 아내가 아니라

황제의 어머니예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질 부카님."

"타기님, 그런 거라면 우린 오래전부터 같은 편이 아닙니까?

카이샨이 승전을 거듭하여 회령왕(懷寧王)으로 봉해졌습니다.

전 울루스를 통틀어 그만큼 인기있는 황족도 없죠."

"남들에게서 얻는 인기만으로는 부족해요."

"부족하다니요. 제위 계승자로서 카이샨에게 모자란 점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어머니의 선택."


타기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목소리를 절반쯤 낮췄다.

"들어보세요. 이질 부카님,

카이샨이 유력한 후계자로 손꼽히는 이유는 바로 내 아들이기 때문이예요.

내가 콩기라트 출신이니까요. 최고의 혈통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같은 출신의 대카툰들이 남긴 유산으로 내가 숱한 재상들과 왕공들을 포섭하지 않았다면

제위는 불가능한 거예요. 싸움터에서 이겼다고 모두 카안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날 지지하는 콩기라트 왕공들이 없다면 제위에 오른다고 해도 그 자리를 지키기란 힘들어요."

"카이샨이 콩기라트의 지지를 못받을 거란 말씀입니까?"

"난 이름뿐인 황태후는 되고 싶지 않아요."


타기의 눈이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며 번쩍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난 황궁 제일 안쪽 방에 갇혀서 낮잠으로 소일하며 지낼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어요.

내 뜻을 충분히 따르고 실행해 줄 카안이 필요해요.

카이샨은 절대 내게 힘을 나눠 주지 않겠지만, 아유르바르와다는 달라요.

그건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이질 부카님,

당신이 고려 국왕의 자리를 되찾는 것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황실의 아카가 되고 싶다면.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판단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아요."


"제게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요? 타기님.!"

타기가 비로소 만족스레 웃었다.

'욕심 많은 여우같으니!'

타기의 궁에서 나와 중얼거리는 원은 연방 웃고 있었다.


'불루칸보다도 내 어머니가 첫 번째 경계 대상이야.'

그 한마디 남기고 서쪽 경계로 떠난 카이샨은,

카이두를 완파하고 두아를 황제의 휘하에 끌여들였으며

카이두의 아들인 파파르마저 항복시켰음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원은 새삼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옳았어. 카이샨. 내부의 적이 훨씬 더 위협적이지.'

그는 타기가 큰 아들을 저지하고 작은 아들에게 영광의 자리를 만들어줄 계획을 열심히 짜고 있을

화려한 궁을 돌아보며 예의 특유한 미소를 싱긋 지었다.

'넌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해. 네 어머니와 동생을 물론이고 그들을 감시해 달라고 부탁한 나까지도.' 

(3권 pp253-257)


 

여자보다 정치가 더 매력적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권력을 향한 권모술수가 너무나 처절하다.

 


 








 

[타클라마칸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은 세계 최대의 모래사막 중에 하나로서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서부 타림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 쿤룬산맥, 남서쪽 파미르고원, 서쪽과 북쪽으로는 톈산산맥에 의해 경계가 정해진다.

해발고도는 서부와 남부가 대략 1200m~1500m, 동부와 북부가 약 2600m~3300m이다.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크고 작은 사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85%가 이동성 사구이다.

이동성 사구들은 흐트러지기 쉬운 충적토 위를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덮고있는 형태이다.

모래 두께가 300m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한다.

사막에 부는 바람은 그 형태가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서 형성된 지형의 크기, 모습도 매우 다양하다.

사막의 서쪽에는 사암과 점토로 이루어진 활처럼 생긴 마자르 산맥과 쵤 산맥이 솟아있다.

쿤룬 산맥을 흐르는 강들은 사막으로 100~200Km까지 스며들어 모래 속에서 서서히 말라버린다.

 

해안에 위치한 사막과 달리 대륙 한중간에 위치한 사막이라 대륙성 기후가 매우 뚜렷하다.

연강수량은 매우 적어 서쪽 38mm에서 동쪽10mm까지 분포해있다.

강 유역과 사막 주변지역을 제외하고는 풀을 잘 찾아 볼수가 없다.

그래서 정착인구도 없다.

중국의 서부개발정책에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부와 남부에서 거대한 유전 개발이 이루어졌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온대기후대의 높이 있는 사막답게 비교적 추운 기후를 가졌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으면 어쩔땐 영하 20℃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일례로 2008년에 눈이내려 사막 전체가 눈으로 덮인 적도 있다고 한다.

어떤 곳엔 적설량이 4cm나 된 곳도 있었다.

내륙에 꼭꼭 숨어버린 사막이라서 여름 밤이 되어도 아주 춥다.

[사진 및 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피치님]

 







  

[사막과 소통하기]

아무 것도 없기에 사막은 위대하고 전체가 하나이기에 사막은 경이롭습니다.

모래톱에 올라 끝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며 노을을 맞고

뒤이어 어둠을 맞고 별과 달을 쫓다가 잠들면

잠시의 명상과 사색만으로도 누구나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기가 충만하고 기운이 맑은 사막이어서 그렇습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삼나무숲님]


 

[타클라마칸]

소설의 무대는 한반도를 넘어 중국의 대도, 몽고의 타클라마칸까지 펼쳐진다.

책을 읽다가 타클라마칸을 검색해보았다.

사막에 대한 상식이 있어야 책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미지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나중 한번은 여행하고 싶은 곳.

몽골과 그리고......

 







  

[산]

땅의 고적함을 온전히 드러내 주는 빛이 모래언덕 위에서 하얗게 부서지며 은가루를 뿌렸다.

'사람이 사는 세상 같지 않아'

어쩌면 여긴 저승에 들어가는 길목인지도 몰라.

이 모래바다를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정말 그렇게 되겠지......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다.

은은한 달빛이 주는 마력 때문인지 몰랐다.

세상의 끝에 누운 느낌이다.

등이 잠겨 버린 모래가 포근했다.

요람처럼 혹은 무덤처럼.

 






  

그녀는 덜렁 드러누워 자신을 내려다보는 달에게도 미소를 보냈다.

차갑기만 할 것 같은 흰 빛은 햇살보다 온화하고 부드럽다.

그 상냥한 빛속에서 그녀는 모래속에 빠져드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내가 먼저 저 세상에 가서 나중에 온 너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린?

아니면 내가 아직 너를 가슴에 새긴 채 닿은 황천에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너를 만나게 되면?

둘 다 서로의 모든 것을 잊는다면?

이제껏 너를 찾아 헤매던 시간은 어디로 가버리는  거지?'


산은 퍼뜩 눈을 떴다.

이대로 죽는 건 너무 억울해!

그녀는 달빛에 현혹되지 않을 기세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3권 pp176,177)

 






  

[melody with khoomii / 몽골국립마두금연주단]



[린]

베키의 모린호르가 애달피 울었다.

"넌 이 곡을 좋아하지. 다른 곡에는 시큰둥하지만 이 곡만 들리면 귀를 기울여.

난 이 곡 말고는 연주할 줄 몰라"

"예전 누군가가 불러 준 피리소리와 비슷해"

"누구?"

 







[풀잎피리]

  

"어린애라면 이러지 않아. 난 지금 너와 내 얘기를, 우리 얘기를 하는 거야.

네 옆에 있고 싶어. 부모님이 아니라 네 옆에. 그곳이 어디든. 카라코룸이든 산속이든 사막이든.

아니면 지옥이라도. 모르겠어? 널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거야. 나는!"

"미안하지만 베키. 내 얘기 속에는 네가 없어"

"하지만 넌 날 떠나지 않았어! 네 얘기속에 내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유스프!"

"넌 내 얘기속에 없지만 내 얘기 속에 있는 누군가를 생각나게 해 베키."

"누구? 피리를 불어준 사람?

"...그래."

"여자?"

"그래."

"나랑 닮았어? 케레이트의 여자야?"

"아냐, 전혀 달라. 하지만 네겐 그녀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어"

"그녀는....., 죽었어?"

"...몰라. 죽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녀를 찾아갈거야?"

부르르 떠는 그녀의 손이 린의 목덜미에서 가느다란 줄을 단숨에 낚아챘다.

"넌 내가 아니었으면 죽었을거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하지만 은의를 갚기 위해 아내를 맞진 않아. 돌려줘 베키"

"싫어"

손에 든 비단주머니를 마구 흔들며 소치치던 그녀는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주머니를 찢을 듯 풀었다.

주머니 안에서 나온 가늘고 긴 머리칼 몇가닥이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물결처럼 넘실대더니

초원의 세찬바람에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아!"


.....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 적도 없는 왕린. 네가 무엇이라고 명령을 지키고 또 어긴단 말이냐.

이미 한번 죽은 몸이거늘. 난 전하께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움켜진 린의 주먹이 녹색으로 물들어 갔다.

"산!"


신음처럼 그녀의 이름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어둠에 묻혔다.

높이 뜬 달 아래, 원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그는 구부린 허리를 펴지 않을 것 같다. 

(3권 pp206-220) 



 

[원]

"내 초라하고 쓸쓸한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찾아 주지 않을래?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증오하기 때문이라도, 응? 산...." (3권 p265)


 

[사랑]

베키의 간절한 마음이 모른호르에서 울려퍼진다.

그러나 린과 산의 절절한 사랑은 원마저도 부러워한다.

그러기에 질투하고 증오하고 떼어놓으려고 애쓰면서도

둘을 모두 갖고싶은 욕심은 원을 더욱 외롭게 한다.

사랑, 사람을 변하게 한다.

외로워지고 황폐해지더라도 말이다.

소설 속에 녹아있는 사랑이 가슴을 저미게 한다.

어쩌면 역사는 사랑이 힘이리라....



 

[소설의 마무리]

린과 산의 사랑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서 터전을 잡았다.

타클라마칸,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에....

그들의 15살된 아들이 거기에서 나와 원에게 "그림(세명의 소년들)"을 주고, 원은 "장도"를 준다.

"네가 직접 오는 대신에 이걸 아들에게 들려 보낸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산."

킥, 실소하며 그는 그림속의 아름다운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작가 김이령]

처녀작으로 이렇게 방대한 대하역사소설을 썼다는 것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고려 말 몽고관련 역사를 세세하게 알 수 있었으며

타클라마칸을 여행하고 픈 마음이 강렬하게 튀어나왔다. 

  


 


 






















[사막의 풍경] (사진 : 네이버 블로그 피치님)



저렇게 사막을 걷고 싶다.

걸으면서 산과 린을 생각하고 싶다.

나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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