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살이

[거제 탐사] 순백파이프버섯 ㅡ 그 아찔했던 구멍의 기억

풀잎피리 2026. 9. 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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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통 진 아나방 위 아찔한 파이프 기둥
파이프버섯 끝에 오십 년 전 추억 걸려
저 많은 버섯구멍들 내 삶 새긴 점박이

 

순백파이프버섯

 


비가 지나간 뒤, 숲의 썩은 나무 등걸 여기저기가 마치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부분 부분 하얗게 덮여 있었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가지를 치지 않은 민산호점균의 일종인가 싶었다. 노안이 찾아온 흐릿한 눈을 보완하려 늘 들고 다니는 '이동용 돋보기', 폰카의 10배 줌 렌즈를 들이대고 나서야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보고 싶어 찾아 헤매던 '순백파이프버섯'이었다.


​빽빽하게 모여 있는 순백의 미세한 관들, 그리고 그 끝에 송송 뚫린 무수한 구멍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렌즈 속 화면이 거대한 시공간의 통로가 되어 나를 50년 전의 어느 날로 날려 보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하얗게 눈이 내리던 남대문 동방생명 빌딩 건축 현장.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 위로, 나는 무거운 질통을 진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미끄러운 철판 구멍(아나방)을 온 신경을 다해 딛고, 오직 생명줄과도 같았던 차가운 파이프 기둥을 손으로 움켜쥐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아찔하게 옮겨야 했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 위태롭던 시절, 몸으로 버텨내며 건너온 청춘의 시간들이 오늘 마주한 순백의 버섯 구멍마다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50년 전 아찔했던 철판 구멍과 오늘날 숲 속에서 만난 순백의 버섯 구멍. 이 두 구멍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둥글게 모아 쥔다. 거칠고 위태로웠던 청춘의 땀방울이 흘러내려, 오늘 거제의 깊은 숲 속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우주, 나만의 '버섯 만다라'의 단단한 주석으로 피어났다.

 

(2026-06-23)

 

순백파이프버섯

 

멧비둘기(좌), 갈풀(우)

 

간버섯

 

달뿌리풀

 

꼬리새

 

층층나무

 

참느릅나무

 

털목이

 

담홍털구멍버섯

 

큰창날개뿔나방

 

유리버섯

 

콩버섯

 

산딸기점균

 

여우꽃각시버섯

 

비늘고사리

 

가는잎족제비고사리

 

검은물잠자리

 

골풀

 

도깨비가지

 

섬서구메뚜기

 

애기땅빈대

 

수달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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