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나의 삶

2025 나에게 던져진 순간들

풀잎피리 2025. 12. 29.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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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시간은 또 다른 변신
나이와 호기심이 뒤엉킨 순간들은
재활의 안간힘이 이어진 오롯한 스토리
 

미륵산 일출 (2025-01-01)
 
2025년을 맞이하는 통영의 시간이 깨어났다.
집에서 출발해 1시간 40분이 지난 후의 미륵산 일출은
거제도의 산을 넘어온 깔끔한 얼굴이었다.

너도 산을 넘느라 힘들었고, 나도 미륵산을 오르느라 힘들었다.
 이제 우리 친구가 되어 2025년을 놀아보자.
네가 하늘에 있을 때 나도 움직일게!

이렇게 시작한 2025년의 궤적은
의도하지 않은 시간의 최선이었다.
그 발걸음이 미래의 흐뭇함을 좌우하길 바라면서 


 
 1. 종합건강검진 (2025.01.23) 

한국의학연구소 수원 종합건강검진센터 (2025.01.23)

 
은퇴는 제2의 삶을 출발하는 새로운 길이다.
그 길은 건강이 받쳐줘야 하므로
보통은 은퇴 후 바로 종합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 이사와 제주살이
그리고 낙상사고와 재활 기간이 길어
퇴직 후 8년 만에 종합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별 걱정이 없으면서도 왠지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희미해지는 마음에
대장 내시경 결과 용정 1개 제거 및 조직검사를 하자 덜컥 가슴이 떨린다.
 
검진결과를 기다리며 불길한 마음을 제어하는 내가 다른 모습이다.
보름 만에 도착한 결과통지봉투를 앞에 두고 가슴이 두근반세근반이다.
종양표지자 상담 필요, 근골격 치료상담, 위점막 염증소견...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왠지 껄적지근한 마음이다.
건강에 신경쓰라는 말이겠지
문득, 건강검진장에 젊은이들이 득시글거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종합건강검진비는 몸을 생각하는 마음을 부추기라는 비용일 것이다.
그래 아깝다 생각말고 젊은이들처럼 건강을 생각하자.
다리 골절 수술로 재활도 안 끝났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2. 브런치스토리 (2025.02.11부터) 

숟갈일엽 (2025.04.01)

 
나에게 양치식물은 제주살이 중 코로나 극복과 낙상사고 재활의 상징이다.
어렵고 어려운 양치식물, 배우고 익혀도 전혀 새로운 양치식물
세인들은 관심이 없고, 친구는 "참 어렵게 산다"라고 해도 나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글쓰기 사이트 브런치스토리에 들어가 방을 만들고
1주일에 1편씩 양치식물 이야기를 이어간다.
정말 어렵다. 글을 올려도 보는 사람이 극히 적다.
 
그래도 꾸역꾸역 자존심을 걸고 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은퇴 후의 자유에 뭔가의 무거움을 얹고 싶은 내 마음이다.
 
무거움을 얹어야 재활에 명분이 있다. 
정신은 힘든데 몸이 편하면 안 된다.
몸은 주인의 의지를 따라간다는 재활의 길을 믿는다.
  

 3. 통도사 버섯탐사 (2025.02.16부터) 

가시개미포식동충하초(2025-08-17) / 성파큰스님과 함께 (2025-12-21)


통영의 맑은 날씨는 건조함을 유발하여 내 취미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나
 좋은 인연으로 통도사버섯팀에 들어가서 한 달에 한 번씩 통도사 자운암에 간다.
그런 인연 덕에 통도사버섯팀 중 창원팀 3명이 수시로 모여 
야생화, 버섯, 양치식물을 찾는 일정이 있어 통영살이의 재미를 붙였다.
 
통도사버섯팀에서는 버섯 책자 저자인 최석영교수를 알게 되었고
버섯에 관심이 많은 성파큰스님과도 인사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성파큰스님에게 나무연지이끼를 알려드렸더니
성파큰스님께서 스카프를 창원팀 모두에서 선물하셨다.
 
버섯의 흥미를 갖고 동충하초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중 가시개미포식동충하초라는 좀비곰팡이를 본 것을 계기로
자연의 무궁무진한 흥밋거리와 신기한 영상에서 얻은 호기심으로
자연을 탐사하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삶의 큰 힘이다.
 
 
 4. 키르기스스탄 꽃탐사 (2025.06.14~06.21) 

성산일출봉을 닮은 천산산맥 자락의 반영을 배경으로 (2025.06.17)

 
아내의 취미와 나의 취미는 전혀 다르다.
함께 여행할 기회를 만들려고 외국 야생화 탐사팀에도 가곤 한다.
그래서 키르기스스탄 꽃탐사도 아내와 함께 갔다.
 
2022년의 기회를 낙상사고로 잃고서야
3년 후 가게 된 키르기스스탄에 기대는 컸다.
기대에 부응할 만큼 많은 꽃을 보았다.
 
손바닥난초 군락 및 흰색, 꽃고비 군락과 흰색
피뿌리풀 군락, 개감채 풍경, 한들고사리 알현, 노랑 인가목 발견
 겉씨식물과 속씨식물 사이의 브리지 식물인 마황을 본 것은 특별했다.
 
앵무새고개와 꽃섬, 천산산맥 깊숙이 숨어있는 켈슈우호수
특히, 성산일출봉을 닮은 천산산맥 자락의 반영을 본 습지는
제주살이 6년을 마친 감회를 키르기스스탄에 맛본 풍경이었다.

 
 5. 제주 여행 (2025.6.28~07.04) 

사려니숲길 (2025.07.01)

 
제주살이 후 9개월 만에 제주를 찾는 여행을 키르 여행 후 급히 잡았다.
통도사버섯팀 2박3일 제주탐사라는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제주탐사에 나의 한정리스트 1개를 넣어 앞뒤로 기간을 늘렸다.

그 제주여행이 첫날부터 꼬이고 꼬인 악재의 연속이었다.
첫날 한정리스트가 무산되더니, 버섯 탐사 후 동행 탐사도 불가피하게 단축되었다. 
거기다가 디카가 기어이 먹통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10박 11일이 6박 7일로 쪼그라들었다.
두 번의 비행기 취소와 급박한 재티켓팅은 비용을 증가시켰고
뒤늦게 날아온 과태료 통지는 제주탐사에 운전을 서비스한 대가였다.
 
그 와중에도 통도사버섯팀과 좋은 추억을 쌓고 빨간털귀버섯을 보았다.
지인과 함께 공작이끼, 외잎진고사리, 왕모람을 보았다.
상처뿐인 영광이란 말이 이런 것인가?.

망가진 디카는 나의 소중한 아이템이며 줄여서 템빨이다. 
웹소설 템빨의 주인공인 그리드는 이렇게 말한다.
"행운도, 악운도 모두 녹이고 두들겨야 대장장이답지"
 
나의 삶에 걸리적거리는 악운도 삭여서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는 시니어의 시간이다.
그래, 실패한 여행은 없다.
 

 6. 신강 위구르자치구 여행 (2025.10.15~10.26) 

타클라마탄사막에의 한 순간

 
아내와 함께한 꽃탐사는 작년의 몽골과 올해의 키르기스스탄이었다.
나는 좋았는데 비해, 아내는 오지의 탐사에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의 선택으로 신강여행을 떠났다.
 
원래는 내년에 갈 예정이었는데
내년은 통영살이를 끝내는 시점이라 시간이 없어
올해로 앞당기는 마이너스 여행이었다.
 
천산산맥, 카스, 파미르, 타클라칸사막은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천산산맥 남쪽으로 이어진 자연의 향연은 새로운 중국을 본 계기였다.
나와 아내가 모두 만족한 여행이니 만큼 꽃탐사 여행보다 더 흐뭇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1년에 한 번은 하자면서 두 손을 맞잡았고
신강여행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꽃사진보다 더한 추억을 남겼다.
그중 타틀라마칸사막에서 호양나무 배경으로 함께한 사진이 최고의 샷이다.
 
호양나무는 사막에서 땅속으로 10m 뿌리를 내리고 산단다.
호양나무의 끈질긴 삶이 우리의 시간 속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면서
타클라칸사막의 추억을 갈무리한다.
 
 
 7. 기침감기(2025.10.28~11월말) 

감기약 3일분 (2025-10-30)

 
코올록......꼬올록.....꾸울룩...
신강여행의 피로로 핑계될 수 없는 한 달 이상의 기침이 이어지며
내가 내가 아니구나를 절실히 느껴진다.
 
목감기약 3일 치를 먹고 버티다가 
1주일 후 기어이 또 3일 치를 처방받았다.
그러면서도 악착같이 꽃탐사는 계속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콜록이며 만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대민 기피 현상이 나에게도 불어닥칠 줄이야
밥을 먹다가도 콜록~
 
종합건강검진에서  껄적지근하던 느낌이 이런 결과라니
느슨한 재활이 만든 것이 아니라
빠른 세월이 만든 틈 속의 삐걱거림일 것이리라.
 
감기약을 먹고 코올록 하면서 11월이 되었다.
"올해도 벌써 11월이네" 내가 말하니
"내년에 지금은 통영에 없어" 아내가 대답한다.
 
통영의 시간도 반이 지났다니 정말 세월 빠르다.
빠른 시간에 벌써를 남발하고 있으니
 12월에 얼굴 본 아들 말대로 정말 할아비가 된 걸까
 

 8. 개에 물린 순간(2025.11.21) 

그 날의 일기 (2025-11-21)

 
갈황색미치광이버섯 3형제가 말라비틀어진 모습이 눈에 아리다.
이 버섯을 섭취하면 수십 분 내 즐겁거나 갑작스러운 웃음, 환각증세 등이 나타난다.
웃음독버섯, 북한에서는 웃음버섯이다.
 
비가 내린 후 이틀 만에 다시 함안의 함주공원을 찾았으나 그대로였다.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산책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가는데
갑작스레 애완견이 달려들어 다리를 물었다.
 
낙상사고 후 놀란 가슴이 자지러진다.
미친다 미쳐, 줄을 맨 애완견에 당하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112에 신고하고 119에 실려가서 파상풍주사와 항생제주사를 맞았다.
 
물린 부분 소독하고, 약을 한 보따리 처방받고 나오는데 기가 막히다.
들개가 아니라 다행이라지만, 제주살이 낙상사고와 통영살이 개물림이라니
어울리지 않은 단어들이 나의 주위를 맴돌며 광란의 춤을 추고 있다. 
  
 
 9. 비늘우산대이끼 탐사 (2025.11.26) 

비늘우산대이끼의 따뜻한 둥지 (2025-11-26)

 
"요즘 기름값이 비싸졌다"라고 아침에 아내에게 말했다.
아침밥을 먹고 내일 전남 영암에 이끼 보러 간다니깐
"기름값 비싸다고 말해놓고 전라도로 달리다니 미쳤네!"
 
미친 세상에서 나를 거두려면 나도 미쳐야 한다.
끌려온 삶을 시정하는 은퇴 후의 본능의 삶은
내가 끌고 가는 시간이 되어야 행복할 것이다.
 
왜 남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양치식물이나 이끼에 매달리는지
이것은 어쩌면 나만의 안락한 둥지를 그리는 시니어의 본능적 마음일 것이다.
아내의 말에도 나는 왕복 480km를 달려 1mm의 이끼와 씨름해야 하는지. 왜?
 
비늘우산대이끼는 "매우 희귀(quite rare)해서 발견하는 것은 항상 반갑다(nice)."
비늘우산대이끼는 “서식지가 제한(restricted habitat niche)되어 있다."
영국 사이트에서 이 글을 발견하니 영암으로 달려야 할 이유가 명쾌하다.

 niche는 현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단어이다.
어원은 라틴어 nidus(둥지)이며, 요즘은 틈새시장, 나에 맞은 자리를 뜻한다.
현직에서 불합리에 지친 마음이 은퇴 후 양치식물이나 이끼를 좋아하게 된 것이리라. 


 10. 지리산 이끼 탐사 (2025.12.02~12.03)  

이정표

 

통영살이를 하다 보니 매우 건조하고 양치식물이나 이끼를 탐사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지리산의 넉넉함이 싱싱한 이끼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곤 한다.
제주에서 온 꽃객과 함께 풍령이끼를 탐사하러 2025년 12월에 1박 2일 지리산을 향했다.
 
진주에서 만나 진주바위솔을 보고 백무동에 닿았다.
겨울에 접어든 지리산 계곡은 썰렁함만에 맴돌고 있다.
시니어가 된 두 꽃객이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백무동을 오르는데 44년 전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앞서간 두 여성이 뒤에서 헐떡이는 두 남성에게 호루라기로 재촉하던 그 소리다.
그때 지리산을 종주했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이 든 시니어의 눈에는 12월 지리산 계곡도 삭막했다.
목표였던 풍령이끼는 말라비틀어진 이끼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힘없는 하산길에서 이번 지리산의 무모한 도전을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마천의 숙소와 식당을 알고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려야만 하는 시니어의 아쉬운 마음이다. 
 
 
 에필로그 - 12월의 단상 

파도 (2025-12-08)


거제에서 개비자나무 열매를 발견하고 대박을 외쳤는데
아내가 전화로 알려준 자동차 딱지 3개 소식에 쪽박이 되었다.
집에 오니 통장 잔고를 물어봐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70만 원뿐이다.
"전셋집 보일러 수리비 45만 원은 보낼 수 있네
당신이 돈을 너무 많이 썼어"
 
종합건강검진비, 제주여행비, 카메라수리, 외장하드 복구
자동차타이어교체, 내비게이션수리...게다가 딱지값
올해는 이상하게 내 관련 지출이 많았다.
적은 돈도 할부를 끊어야 하는 지방살이
"그래, 슬프다"
 
그렇더라도 엉덩이의 찰떡을 떼어내고
재활의 길을 나서야만 하는 시간이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헉헉 소리
눈에서, 귀에서, 입에서 느끼는 안간힘
늘어지는 재활의 반성소리가
해안산책길 2km 위에 새겨진다.
"뛰고 나니 후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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